연각 / 김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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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83회 작성일 21-11-11 21:27본문
연각緣覺
김수우
먼지는 뭉치를 만든다 뭉치가 흩어진다
구름은 뭉치를 만든다 뭉치가 흩어진다
혹 당신을 만나러 가는 물고기의 영혼들과 만났는가
당신의 부은 눈을 닮은 그 기도들
바다는 파도를 깃털로 만든다
하늘은 바람을 비늘로 만든다
맨발끼리 만난 수평선에서 구부러지는 달빛
그 고독에 비춰 우리는 매일 버스시간표를 읽는다
뭉치가 흩어진다 깨진 발톱들이 뭉치를 만든다
뭉치가 흩어진다 검은 흉터가 뭉치를 만든다
자본의 놀이에 금이 간 바다의 갈비뼈처럼
돌밭에 피어난 흰 도라지꽃처럼
캄캄하여라 눈부셔라
구석구석 돋아난 그물눈들
흩어지며 뭉쳐지며
구르고 달리는 맨발, 맨발들
주머니에 받아놓은 쑥갓씨앗만큼 지극해질 수 있을까
녹슨 닻에 피어난 따개비처럼 무심할 수 있을까
이제 이 모퉁이에 안착한다
모든 기억이 맨발임을, 다시 돌아오는 맨발임을 알았으니
피로한 사랑쯤 이제 괜찮다
―계간 《시현실》 2021년 가을호
1959년 부산 출생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졸업
1995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으로 『길의길』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젯밥과 화분』 『붉은 사하라』 『몰락경전』
산문집 『쿠바, 춤추는 악어』 『유쾌한 달팽이』 『참죽나무 서랍』
『스미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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