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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을 위한 변주곡 /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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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91회 작성일 21-11-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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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위한 변주곡

 

  박수현

 

침대 밑에서 말린 딸의 고양이 캐릭터 발목양말을

소파 구석, 뒤집힌 남편의 줄무늬 양말 한 짝을 찾아낸다

아라베스크 무늬 내 수면 양말은

분명 세탁기 속에 넣었는데 또 한 짝이 달아났다

뒤꿈치에 구멍 난, 엄지발톱이 슬쩍 내비치는

그 양말짝들은 어디로 갔을까


양말에도 길들이 새겨져 있어

딸의 아메리칸 컬은 활처럼 등을 휘고

맹목적인 낙하라도 감행하려는 걸까

베란다 난간에서 불안을 말아 올리며, 야옹

거꾸로 매달려, 야옹 야옹


남편은 초원을 달리는 얼룩말을 보러

케냐행 비행기를 탔는지도 모른다

청동기 사내들처럼 양털 발싸개를 감고

얼룩말을 겅중겅중 쫒다가

바람이 흩어지는 움막으로 돌아오고 있을게다


나는 푸른 아스파한으로 간다

이맘 모스크의 아라베스크 연속무늬를 신고 따라가면

조붓한 골목 안 타일과 카펫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그곳에는 실삼나무, 대추야자 나무가 하늘로 뻗고

장미꽃들이 송이송이 포개진다

아스파한 로즈를 노래한 어느 시인처럼

나도 눈멀어 길을 건넌다

노천카페 유리호리병 안, 박하 향은 끓어오르고

긴 수염의 노인이 물 담배를 졸며 피운다


강변엔 검은 차도르들이 달디 단 오디를 줍고

자전거를 탄 젊은이들이 카주 다리 너머

그 옛날 페르시아로 간다


세탁 종료 벨이 울린다

휘뚜루마뚜루, 헐렁해진 양말들을 넌다

짝짝이 양발 사이를 지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 사이로 난 길로 떠난 너를 지나

아라베스크 자세로 밤이 오는 쪽,

나는 이스파한으로 간다


  *압마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이란 영화

  

박수현 시집 샌드 페인팅(천년의 시작, 2020)


112.jpg


 2003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운문호 붕어찜』 『복사뼈를 만지다

공저 시집 관계에 대한 여덟가지 오해』『티베트의 초승달밍글라바 미얀마 『샌드페인팅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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