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가고 / 조정인 > 오늘의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오늘의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舊. 테마별 시모음  ☞ 舊. 좋은시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가고 / 조정인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91회 작성일 21-11-14 21:04

본문

<제1회 구지가 문학상 수상작>

  

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가고

 

  조정인

 

 

  지금은 산사나무가 희게 타오르는 때. 나여. 어딜 가시는지? 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내가 나를 경유하는 중이네.

  흰 터번을 쓴 어린 수행자 같은 산사나무 수피를 더듬는다. 내가 나를 더듬고 짚어보고 헤아려 보듯. 나는 재에 묻혀 움트는 감자의 눈, 움트는 염소의 뿔, 움트는 붉은 승냥이의 심장, 봄 나무가 내민 팥알만 한 새순, 겨울 끄트머리에 걸린 시샘달* 방금 운명한 망자의 움푹 꺼진 눈두덩, 생겨나고 저무는 것들 속에 눈뜨는 질문. 나여, 나는 어디로부터 나를 만나러 산사나무 하얗게 타오르는 이 별에 왔나?

 

  어제 나는 스물일곱에 요절한 나를 조문하고 왔네. 꽃 같은 얼굴이 웃고 있는 영정 앞에 예를 갖추고 향을 피우고 한 송이 애도를 놓고 왔네. 나는 나의 빈궁한 유배처, 나의 고적한 유적지, 불탄 폐사지, 내가 나를 답사하고 탐사 중이네. 휘돌며 흰 보선발을 들어 춤도 춰보네. 나는 파장한 거리의 불 꺼진 상점들. 나는 나의 목 쉰 장사치. 나는 나의 홍등가. 내가 나의 창부, 거간꾼이라네. 그렇다면 나여. 끝내 나의 무엇으로 나는 남으려는지? 나는 나의 번다한 그 모든 혼란과 혼돈. 일생 나를 따라다니며 명치끝을 건드리는 생각이라는 뿔로 한 줄 문장을 쓰는 나는 고작 나의 가냘픈 질서, 나는 오늘도 문득, 태어난 일의 기적을 사네. 나라는 가능성을 사네.


  둑길에는 어린 산사나무가 한 광주리 꽃을 피웠네. 산사나무라는 해당화라는 이름에 묶인, 나무라는 꽃이라는 색()의 배열을 지나네. 몇 걸음 가다보니 못다 핀 꽃망울이 달린 채 부러진 꽃가지가 던져져 있네. 나는 찢겨져나간 나를 지나치지 못하네. 꽃가지를 주워 둑길을 걷네. 지난해 봄빛이 되비치는 둑길, 나는 나의 전생과 후생을 주워 둑길을 흘러가네. 빛과 그늘이 출렁이는 유리, 혹은 유리의 안쪽을 물고기들의 유영처럼.

 

  산사나무는 나를 지나가고 나는 산사나무를 지나가네. 하나의 어항을 쓰는 두 마리 물고기의 동거처럼.

 

   *2월달 잎샘추위와 꽃샘추위가 있는 겨울의 끝 달 (오픈사전)



jojungin-200.jpg

 

1998년 《창작과 비평 》등단
제2회 토지문학제 시부문에서 대상
시집『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장미의 내용』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704건 7 페이지
오늘의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140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3 0 10-15
140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9 0 11-07
140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62 0 02-28
140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40 0 04-09
140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49 0 05-08
139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57 0 05-29
139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61 0 06-24
139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09 0 07-25
139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6 0 12-29
139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49 0 01-25
139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74 0 02-12
139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7 0 03-02
139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43 0 03-20
139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52 0 04-13
139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76 0 05-05
138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39 0 05-29
138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73 0 06-14
138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81 0 06-26
138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23 0 07-06
138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99 0 07-18
138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4 0 07-28
138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58 0 08-05
138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34 0 08-17
138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76 0 08-29
138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3 0 09-07
137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30 0 09-26
137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8 0 10-06
137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40 0 10-19
137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88 0 10-27
137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93 0 11-04
열람중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92 0 11-14
137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7 0 11-24
137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9 0 12-05
137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80 0 12-20
137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4 0 12-28
136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68 0 01-09
136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04 0 02-02
136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0 0 03-02
136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1 0 03-10
136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0 0 04-11
136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6 0 06-06
136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74 0 07-06
136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7 0 07-25
136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48 0 08-10
136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80 0 08-28
135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69 0 09-25
135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 0 05-09
135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7 0 01-03
135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67 0 01-15
135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83 0 01-30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