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 신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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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69회 작성일 21-11-30 20:16본문
거미
신덕룡
다릿골에서 백동저수지로 가는 길이다
동네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작은 하천을 따라 저수지로 거슬러 올라가다
T자로 꺾인 곳에서 한 번 쉬고
왼쪽으로 또다시 왼쪽으로
조심조심 기어서 올라가는 길 끝에 내가 산다, 아니
거기 내 집이 매달려 있다
나는 길을 되짚어 나올 때마다 내뺀다고 한다
길 중간에 남의 땅이 끼어 있어
시빗거리가 따라다니니, 아무튼 훤하게 뚫린 곳으로
딱히 행선지를 정하지 않았어도
쌩, 거침없이 간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멀리 갔어도
끝끝내 뒤따라오는 길을 떼어내지 못한다
세상과 떨어져 숨어있는 산간 오지에도
낯 뜨거워 지워버리고 살다가 문득 떠오르는
기억의 한 모퉁이에서도 뽑혀 나오는 길이 있으니
좁고 울퉁불퉁한 때로는 뚝뚝 끊어진
오랜 세월 길이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길이
어느 순간, 악착같이
전심전력으로 삶의 꽁무니에 찰싹 들러붙는 것이다
무작정 내뺀다고 될 일은 아닌 듯싶다
거미줄처럼 잘 보이지 않는
가느다랗게 이어진 길도 때론 동아줄처럼 튼튼해 보이니
여기저기 참견할 일투성이다
어떤 매듭을 풀고 또 지어야 할지
별의별 것들이 다 발끝에서 걸리적거린다
―계간 《시현실》 (2021, 봄호)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85년 《현대문학》, 2002년 《시와시학》으로 평론 및 시 등단
시집으로 『소리의 감옥』 『아주 잠깐』 『아름다운 도둑』 『하멜서신』
저서 『생명시학의 전제』 『문학의 이해』 등
제1회 발견문학상, 제16회 경희문학상, 제27회 편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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