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법 / 배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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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11회 작성일 21-11-30 20:30본문
화법話法
배창환
내가 이곳에 와서, 처음 눈떴을 때
세상은 캄캄한 어둠 덩어리,
누군가 내 입술에, 입술을 포개어 속삭였다
- 으-ㅁ-아, 따라 해 보아!
- 으-ㅁ-아, 따라 해 보니
캄캄한 어둠 덩어리 한가운데
으-ㅁ-아, 라는
빛이, 한 점
탁,
켜졌다
제주 4.3기행, 지하 동굴, 칠흑 어둠 광장에서
가이드가 성냥을 확, 그었을 때
겁먹은 얼굴들을 되돌려주는 빛을 보며
어둠은 어둠이 아니라
빛의 자궁임을 알고 말았지만
으-ㅁ-아, 라는 빛, 주위로
아-ㅃ-ㅏ, ㅂ-ㅏ-ㅂ, ㄷ-ㅗ-ㄴ, ㅊ-ㅗ-ㅇ......
내 기억회로에 빛이 하나씩 들어오면서
망막이 온갖 빛으로 출렁거리면서
빛은 더 이상 빛이 아니었다
어느 숲이었나, 어둠은 도깨비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앞에서 캄캄하게 뒤엉켜 버린,
발밑을 더듬어가고 있는 이 길이
낭떠러진지 지뢰밭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계간 《사이펀》 (2021, 여름호)
1955년 경북 성주 출생
1981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잠든 그대』 『다시 사랑하는 제자에게』
『백두산 놀러 가자』 『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
『겨울 가야산』 『소례리 길』
시선집 『서문시장 돼지고기 선술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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