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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꽃 / 김상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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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84회 작성일 22-01-24 16:21

본문

학생의 꽃

 

  김상혁


여자가 되고 싶었으나

그런 말은 집으로 돌아와서

엎드려서 침대에게만 했다

침대에 입술을 대고

침에서 라텍스 냄새가 날 때가지 말을 했다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으므로

어머니는 여자였으므로 이해할 리가 없었다

가족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멀리

놀러 가지 않으면 눈물이 났다

하루가 잘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급 빌딩의 남자 주차 안내들처럼

여자 목소릴 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런 목소리는 집으로 돌아와서

교복과 모자도 벗지 않고 엎드려서

가끔씩 침대에게만 했다

여자들만 남은 가정에서는 흔히 작은 슬픔 같은 건 금지되곤 한다

침침한 새벽 눈을 깜빡이면

자는 당신들 모르게 벽지의 커다란 붉은 꽃들이 자라난다고는

그러니까 말할 수 없었다

왜 그런 것인지 대답할 수 없는 슬픔은

금지되곤 했다 내가 치마를 입고 죽어 있다 해도

집에서 불쌍해지는 건 내가 아니었다

그건 이상한 일이지만

어머니는 매일 일을 나갔다

그렇다고 어머니처럼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런 말은 침대에게도 하지 않았고

하굣길 깜깜한 동네 초입에서 작별할 때마다

내 거기를 만지던 애인에게도 하지 않았다

 

김상혁 시집,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 (민음사, 2013)



 

ㅏㅑ.jpg

 

1979년 서울에서 출생

2009세계의 문학등단

시집으로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다만 이야기가 남았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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