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자화상 / 유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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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88회 작성일 22-02-10 21:41본문
슬픈 자화상
유현숙
숲은 미로
입추와 처서가 지나고 한로와 상강이 지나도록
안개 속을 걸었습니다
근본도 없는 질문은 묻다가 묻혀지고
손끝이 내젓는 허공에 존중과 배려가 있는가요
물방울이고 그림자 같은 백날은 짧은 시간일까요, 긴 시간일까요
여름 끝과 가을이 담겨있는 한 계절을 일생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이 세상이 서툴러
무간지옥처럼 상처받고 천당처럼 웃었던
생애 붉은 한 마디
헬렌*처럼 당신을 그리고 싶었고 백석처럼 당신을 쓰고 싶었습니다
정현, 내 전생의 자화상
당신을 사랑하는 데는 하루가 걸렸지만**
당신을 잊는 데는
비단 옷자락으로 백 년마다 닦은 유순의 바위가
닳아 없어져야 할까요
꿈을 같이 꾸지 못하고
빗소리를 같이 듣지 못하지만
어느 날에는
천궁天穹을 흐르는 떠돌이 별로 떠돌이 바람으로
만나는 날 있을까요
정현, 내 후생의 자화상
*헬렌 쉐르백 : 핀란드 화가
** 故 장영희 님의 시 중에서 빌려옴
―반년간 《상상인》 2022년 1월호
경남 거창 출생
2001년 <동양일보>와 2003년 《문학 선》등단
2009년 문예창작기금 수혜
시집『서해와 동침하다』『외치의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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