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생을 흔들다 / 강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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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생을 흔들다
강상윤
가마솥 뚜껑을 닦는다
쑥 들어간 뚜껑 안을 자세히 보니
들국화 꽃무늬처럼 실금이 나 있다
무쇠 솥뚜껑의 결이 원래 그렇게 생겼는지 알 수 없으나
들국화 모양으로 금이 가서 가볍게 물결을 치고 있다
그 동안 폭발할 것 같은 가마솥의 뜨거운 열기를
어떻게 견디었을까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가슴 한복판부터 갈라졌을까
갈라졌으면서도 어쩌면 저리도 가벼울 수 있을까
투명한 바닥에 잔물결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
고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에는
차라리 산산조각이 나도록 스스로를 길들여온 것일까
가마솥 뚜껑을 닦는다
나의 삶이 얼마나 길이 잘 들었는지
얼마나 더 든든해질 수 있는지
무쇠 솥뚜껑의 갈라진 길을 따라가 본다
갈라진 길에서는
때늦은 연회색 들국화들이 무리 지어
자기 생(生)을 흔들고 있다
손끝이 솥뚜껑처럼 댕댕거리는 듯하다.
―강상윤 시집 『속껍질이 따뜻하다』 (열린시학, 2004)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2003년《문학과 창작》 등단
시집으로『속껍질이 따뜻하다』『만주를 먹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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