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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퍼, 아마도 /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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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48회 작성일 22-02-15 12:35

본문

리퍼, 아마도

 

  이영식


저리 헐렁한 배를 보았나

건들바람에도 홀딱

넘어질 듯 기우뚱거리는 쪽배

연골 다 닳도록 나들던 정든 집 떠나

거처 옮기는 아버지 태우고 간다

얼굴까지 내비치게 닦아서

애지중지 모시던 가죽구두 놔두고

오르기 쉽고 내리기 편한

슬리퍼 조각배에 실려가신다


구십 구비 에돌아 흘러온 배

동란 통 참전용사 시절에도

몇 번 좌초 되었다가 살아왔건만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 지

앞길 뒷길 다 보이지 않아

누구도 울지 않고 웃지 않는 배

북어처럼 비쩍 마른 발뒤꿈치에 붙어

질질 끌려가면서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믿습니다

희망고문 같은 잠언 한 토막 중얼거리는


아버지를 따라왔던 그 많은 신발들

길고 좁은 골목길 가장자리에

철지난 망초꽃 무리 되어 손 흔든다

아마도, 잘 가시라는 듯 

 

계간 시와소금2021년 겨울호


5~1.JPG


경기도 이천 출생

2000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공갈빵이 먹고 싶다』『희망온도』『』 꽃의 정치

17회 애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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