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등에 기대어 / 나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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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에 기대어
나호열
초여름보다는 애써 늦봄이라 하자
소나기는 말고 눈물이 아니라고 우겨도 좋을
눈썹 가까이 적시는 가랑비라 하자
먼 길을 떠나야 할 것 같은 아침보다는
기다리는 이 없어도 돌아가는 마음이 앞서는
저녁 어스름이라 하자
마음이 하냥 깊어져야 만나는 개선사지
꽃대궁만 키를 세우고 피어나지 않은 꽃
그 앞에 서면 꽃은 피는 것이 아니라
창을 여는 것이라고 우겨도 좋겠다
시방十方을 한눈에 담고
제 그림자를 옷깃으로 날리는 꿈을 잊지 않았느냐고
화창花窓에 어리는 혼잣말
어디에도 세월의 뒷모습을 보이지 않아
더 살고 싶은 외로움을 손잡아주는
그 어디쯤
나도 네가 되어 있는 것이다
―나호열 시집 『안부』 (밥북, 2021)

1953년 충남 서천 출생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1986년 《월간문학》신인상 수상
1991년 《시와시학》중견시인상 수상
2004년 녹색 시인상 수상
미래시, 울림시, 강남시, 시우주문학회 동인으로 활동
시집 『담쟁이 넝쿨은 무엇을 향하는가』
『집에 관한 명상 또는 길찾기』,『망각은 하얗다』
『아무도 부르지않는 노래』,『칼과 집』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낙타에 관한 질문』
『촉도』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안녕, 베이비 박스』『안부』
E-Book 『예뻐서 슬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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