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협소한 세상이 한사람에게 있었다 / 황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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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협소한 세상이 한사람에게 있었다
황학주
숨도 쉴 수 없는
행복하게 외로웠던 순간들을 안녕,
이라고 괄호 쳐두면
운명이 생각하는 시간에 대해 낙인에 대해
급기야는 우리에게 보석이 되어버리는 불취(不取)에 대해
한번은 물어줘야지 싶다
오래 말린 곶감 속에 감씨 하나로 앉아 네가 울고 있을 것 같았고
가시나무에 여윈 등을 치대고 있는
내 기다란 그림자-등뼈에 대팻밥처럼 보풀이 인 채 휘청이는 것도 같았다
사막보다 더 캄캄한 바깥을 보았으면 해서
우리가 커튼 안으로 숨어든 것을 일테면 예정설로 묶을 수 있나
누구의 것이 된다는 마음의 시큰시큰한 통각만 아니었다면
마른나무 열매처럼 또르르 그저 굴러간 것인데,
커튼 뒤에서 막 사랑을 시작하려는 순간
누군가 부를 수 있다 한사람은 밖으로 나가야 하는
황량한 사막 커튼이 동시에 열리는 자정의 문밖이 있다면
문틈으로 영혼 상한 그림자를 끌며 나가
나는 책장을 펴고 낭독을 시작하리라
알아주렴 당신과 나 사이에 구원이 있었다
―황학주 시집 『사랑할 때와 죽을 때』 (창비, 2014)
1954년 광주광역시 출생
1987년 시집『사람』으로 등단
시집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갈 수 없는 쓸쓸한』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
『루시』『저녁의 연인들』『노랑꼬리 연』』『某月某日의 별자리』
『사랑할 때와 죽을 때』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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