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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 유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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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22회 작성일 22-04-0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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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늦여름 아니면 초가을

 

    유희경

 


  늦여름 아니면 초가을 기억은 믿을 수 없다 아버지는 모로 누워 계셨다 한들거리는 거미줄 거미는 보이지 않았다 거미는, 숨어 있단다 거미줄을 건드려 보렴 하지만 나는 무섭다 마루가 삐걱거리는 소리 수십 년째 말라 가면서 아버지는 돌아누웠다 그럴 때의 냄새 그럴 때의 온기 거미줄을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 아버지의 등에도 손을 댈 수가 없었다 그러니 거미도 아버지도 움직이지 않았다 비어 있을 거라는 가정은 어째서 하지 않았던 것일까 보이지 않으면 숨어 있는 것일까 엉금엉금 기어 문 쪽으로 달아나는 그림자 문 아래 틈으로 밀어 넣었다가 거두는 빛의 손 잡아야지 도망칠 수 없도록 늦여름 아니면 초가을에 기억은 믿을 수가 없어 나는 아직도 무섭고

 

―《문장웹진20222월호



 

유희경.jpg


1980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졸업

2008년 <조선일보신춘문예 등단

시집 오늘 아침 단어』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이다음 봄에 우리는』 등

현대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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