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의 복사본 / 최정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심정의 복사본
최정례
불이 꺼져도 연기는 머뭇거리듯
감정이 끝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흔들리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에게
붙잡혀 흔들린다
나무둥치에 붙잡혀서 반짝이는 것들이
호수에서 튀어오르는 빛줄기가
나의 항로를 반짝이며 따라온다
거기 있는 것들은 거기 있어야만 하는 것들
굳이 끌어당겨 내 것인 양 생각하는
이 심정의 끈적거림이 문제
붙잡혀서 흔들리는 나뭇잎들
그것들이 내 생각의 벌떼라고? 아니다
나뭇잎은 그냥 나뭇잎일 뿐
심정의 복사본인 나뭇잎일 뿐
벚꽃 왕창 피었다 떨어지고
수없이 왔다 가는 4월
빚 갚고 갚는다 생각했는데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4월
―최정례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 (창비, 2015)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1990년 《현대시학》 등단(2021년 별세)
시집 『햇빛속에 호랑이』 『붉은 밭』 『레바논 감정』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개천은 용의 홈타운』『레바논 감정』
백석 시 연구서 『백석 시어의 힘』등
산문집 『시여 살아 있다면 힘껏 실패하라』
제15회 미당문학상, 제8회 오장환문학상
제14회 백석문학상, 제52회 현대문학상 수상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