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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걸터앉은 나의 구체적 자세 / 황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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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55회 작성일 22-04-27 13:53

본문

허공에 걸터앉은 나의 구체적 자세

 

  황성희

 

 

최승자를 읽을 때 가장 두려웠던 건

 

시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세계보다는

자신의 시를 살아낸 한 여자 때문이었다

 

그런 식으로 감당해야 하는 게 실존이라면 나는

누구에게도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사물의 귀퉁이가 투명해진다 싶은 날에는

얼른 뛰어가 텔레비전을 켠다

 

거기에는 이국의 전쟁고아들도 있고

불치병으로 투병하는 환자들도 있다

후원단체의 스케치북에 감동하는 아버지와

주민센터의 도배로 곰팡이가 숨겨진 방에서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끄는 가족도 있다

 

그들 옆에서 잠시 나의 허공을 잊고

옷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후원계좌를 받아적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건강한 게 최고야

먼 세계의 메아리 같은 내 목소리를 듣지만

 

숨소리의 직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시시각각 실존의 정면이다

 

대대로 이어져 온 나는 무엇에 대한 은유인지

이 세계는 어떤 기원에 대한 상동과 상사의 기관인지

 

유서 깊은 벽에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1)이 되어

명상을 가능하게 했던 햄버거2)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지만

어떤 식으로든 없어지고야 마는

 

구체적 생애에 대하여 생각한다

 

  1) 최승자 일찌기 나는중에서 부분 인용.

  2) 장정일의 시 햄버거에 관한 명상의 제목 변용. 

 

―《문장 웹진202112월호


 

200811220058.jpg


 

1972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0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엘리스네 집』『4를 지키려는 노력 』
눈물은 그러다가 흐른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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