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가족 / 김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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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607회 작성일 16-01-19 09:43본문
물의 가족
김 안
물의 몸을 감싸 안고 있던 긴 팔들이
물 바깥으로 기어 올라올 때, 그제야
우리는 서로의 목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던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 내 손은 누구의 목을 향해 기어가고 있는 것일까.
늙은 잡부들의 쉴 새 없는 엉덩이처럼
힘없이 늘어진 해는 지고
또 지기만 하고
우리는 패배와 실패를 구분하지 못하고
이 목에도,
이 손에도
애시당초 계급이 없었다면 빈곤이 없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더 솔직할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하얀 물이 제 몸을 짓찢어 붉을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십일월, 얼음벽이
우리의 손가락을, 입 맞추던 우리의 혀를 죄다 끊어가 버린다고 해도
그 긴 팔이 우리를 한데 껴안고
물의 음낭 속으로 회향(回向)할 때까지
우리는 역사일 수 있을까.
밤이 되어도
조국의 별은 빛나지 않고
조국의 물은 흐르지 않지만
잠든 가족의 눈동자 속에 흐르는 비열한 생활의 전해질들,
그것들에 실려 온 무감의 피륙들을 뒤집어쓰고 선
제 스스로 기어 나와
모든 잠든 가족의 목을 조르는.
본명 김명인
1977년 서울 출생
2004년《현대시》로 등단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시집『오빠생각』『미제레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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