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 폭설 /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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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719회 작성일 16-01-21 10:08본문
나흘 폭설
박성우
폭설이다
버스는 나흘째 오지 않고
자두나무정류장에 나온 이는 자두나무뿐이다
산마을은 발 동동거릴 일없이 느긋하다
간혹 빈 비닐하우스를 들여다보는 발길도
점방에 담배 사러 나가던 발길도
이장선거 끝난 마을회관에 신발 한 켤레씩을 보탠다
무를 쳐 넣고 끓이는 닭국 냄새 가득한 방에는
벌써 윷판이 벌어졌고 이른 낮술도 한자리 차고 앉았다
허나, 절절 끓는 마을회관방엔 먼 또래도 없어
잠깐 끼어보는 것조차 머쓱하고 어렵다 나는
젖은 털신을 탈탈 털어 신고 다시 빈집에 든다
아까 낸 눈길조차 금새 지워지는 마당,
동치미국물을 마시다 쓸고 치직거리는
라디오를 물리게 듣다가 쓴다 이따금
눈보라도 몰려와 한바탕씩 거들고 간다
한시도 쉬지 않고 눈을 쓸어내던
싸리나무와 조릿대와 조무래기 뽕나무는
되레 눈썹머리까지 폭설을 당겨 덮고 누웠다
하얀 어둠도 눈발 따라 푹푹 쌓이는 저녁
이번엔 내가 먼저, 긴긴 폭설 밤을 산마을에 가둔다
흰 무채처럼 쏟아지는 찬 외로움도 예외일 순 없다
1971년 전북 정읍 출생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02년 시집 『거미 』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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