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의 문제 / 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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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90회 작성일 22-07-21 12:55본문
시각의 문제
김상미
이 거리가 아프다
끼리끼리 놀고 끼리끼리 먹고 끼리끼리 웃어대고 끼리끼리 잠자는
제대로 눈물도 나지 않고 분노도 일어나지 않고 감동도 되지 않는
얇아질 대로 얇아진 뼈들이 줄줄이 줄서기만 하는
뇌세포는 췌장세포를 좋아하지 않고
표피세포는 진피세포를 끊임없이 불신하는데도
아까운 5리터의 피
줄서기에 다 쏟아붓고 있는
미쳐서 환장한 갱스터 한 명 없고
사랑에 실오라기 하나 없이 덤벼드는
눈먼 방탕 하나 없는
가증스런 연명(延命)만이 판을 치는
야비한 이 거리
이 거리가 정말 아프다
노회한 조련사들만 우글우글
빛나는 미래로, 미래로
발기불능 자식들을 품에 안고 가는
기름칠한 넓적다리 같은 이 거리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점점 더 모른 체하고
질겅질겅 껌만 씹어대는 세계화를 찬양하며
스스로 죽어가는 어중간한 이들
어떤 게 좋은 삶이냐고 묻는 아이 하나 없이
거대한 세계 속으로 사그라지는 석양
아무리 잘 지내도 보름달은 결코 뜨지 않을
킬킬대는 지옥의 서문 같은 이거리
날마다 비탄의 발길로 차고 또 차올려도
거짓말같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웃고 있는
영원한 일인칭
이 거리가 아프다
정말 아프다
―김상미 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2017)
1957년 부산 출생
1990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으로 『모자는 인간을 만든다』 『검은, 소나기떼 』 『잡히지 않는 나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한 당신』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산문집 『아버지, 당신도 어머니가 그립습니까』등
2003년 박인환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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