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을 접으며 / 최영미 > 오늘의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오늘의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舊. 테마별 시모음  ☞ 舊. 좋은시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수건을 접으며 / 최영미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05회 작성일 22-07-25 21:08

본문

건을 접으며

 

    최영미

 


엉망인 이 세상을 내 손으로 정리할 순 없지만,

수건이라도 가지런히 접어야지.

수납장과 서랍의 질서를 나는 사랑하지.

 

일요일 오후에 빨래 걷기를 잊지 않으면

내 인생은 순항할 듯,

더러운 일주일을 견딜

속옷을 접는다.

 

내 손을 거치면 어떤 모양의 옷이든

작은 사각형이 되지요.

 

저 엉망인 세상과 맞설

투쟁 의지를 불태우며 수건을 접는다.

매일 아침 깨끗한 속옷을 입을 수 있다면,

누구든 상대해주마.

 

빨래 접기가 귀찮아지면

미련 없이 떠나야겠지.

내게 더러움만 보여준 땅,

흐린 하늘, 최루탄과 미세먼지에 유린당한 눈.

너무 맑은 날에는 눈물이 났지.

 

한 번뿐이었던 어느 화창한 봄날,

그에게서 배운 대로 세로로 수건을 말아

수납장에 세워둔다 포개진 기억들.

벌써 이십 년 전인데,

너는 내게 영원히 젊은 남자.

(엄마에게 그를 보여주진 않았지)

 

그와 헤어진 뒤, 하얀색만 입었지

내 헐렁한 팬티를 그는 싫어했지

할머니 같다고 놀렸지

나는 흰색.

엄마는 누런색.

(너는 무슨 색이었니? 섹시한 검정?)

건조대에서 흰색을 골라내느라

누런 수건을, 어머니를 방바닥에 떨어뜨렸다.

미안해 엄마.

 

엄마는 이제 수건을 접지 않는다.

혼자 머리를 감지도 못한다.

내가 와서 당신을 씻어줄 토요일만 기다리는 엄마.

토요일이 너무 빨리 다가온다고 투덜대는 나.

 

어머니의 요양병원에서 가져온 누런 수건을,

누렇게 바랜 내의를 비닐봉지에 넣기 전에

냄새를 맡는다. 아무도 해치지 않고

사나운 고기를 싸는 상추 잎처럼 순하게 살아온 당신.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엄마,

드럼세탁기도 없애지 못한 오줌 냄새.

 

엄마 수건과 내 수건이 섞이는 게 싫어

따로 빨았다. 언제나

위생 관념이 철저했던 어미가 물려준 결벽증 때문에

어미의 세균을 1회용 비닐봉지에 밀봉하고

돌아서, 터지는 소리.

 

시리아를 공습한 미사일의 섬광처럼

어둠을 찢으며, 가슴이 갈라지며

오래 벼르던 언어가 폭발한다.

 

엉망진창인 세상을 내 손으로 정리할 순 없지만……

쉼표와 마침표의 질서를 나는 사랑하지. 

 

웹진 비유20191월호



최영미.jpg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및 홍익대학교 대학원(서양미술사졸업

1992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서른잔치는 끝났다』 『꿈의 페달을 밟고

소설 흉터와 무늬

수필 시대의 우울』 『우연히 내 일기를 엿보게 될 사람에게

화가의 우연한 시선』 

13회 이수문학상 시부문 수상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3,178건 10 페이지
오늘의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272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40 0 08-05
272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26 0 08-03
272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6 0 08-03
272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82 0 08-03
272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9 0 07-31
272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93 0 07-31
272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41 0 07-31
272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22 0 07-31
272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3 0 07-25
271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89 0 07-25
열람중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6 0 07-25
271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4 0 07-21
271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90 0 07-21
271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4 0 07-21
271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73 0 07-19
271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94 0 07-19
271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3 0 07-19
271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45 1 07-15
271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91 1 07-15
270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48 1 07-15
270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86 0 07-10
270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45 1 07-10
270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86 0 07-10
270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36 0 07-07
270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4 0 07-06
270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6 0 07-06
270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9 0 07-06
270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6 0 07-06
270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4 0 06-30
269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4 0 06-30
269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36 0 06-30
269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17 1 06-28
269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31 1 06-28
269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2 1 06-28
269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30 1 06-27
269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42 1 06-27
269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98 1 06-27
269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0 1 06-24
269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90 2 06-24
268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98 1 06-23
268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95 1 06-23
268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93 2 06-23
268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82 1 06-20
268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06 1 06-20
268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2 1 06-20
268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58 1 06-17
268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4 1 06-17
268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4 1 06-17
268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3 3 06-15
267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91 2 06-15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