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 꽃받침의 미소, 어쩌면 파랑새 / 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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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꽃받침의 미소, 어쩌면 파랑새
이진명
방역 마스크의 벽에 갇혀 맞는 세 해째의 봄
긴 두꺼운 외투로 같이 벽을 친 지난겨울이
어쩌겠냐 이번도 봐줘야 할밖에 하며 저를 허문 덕분
봄 햇빛 날개 친다
부신 봄날
다시 봄이 온 게 어디냐
새 마스크 갈아쓰고 버스 정류소에 섰다
가로에 봄 단장이 시작됐나 보다
정류소에 못 보던 새 꽃화분이 놓였다
좀 떨어져 있어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는데
두 개 새 화분한테로 자꾸 눈길이 간다
남은 시간 4분. 충분해. 새 화분한테로 간다
각각 노랑, 남보라 꽃이 한 주먹씩 탄생해 있다
노랑, 남보라 보석 아기들이 생생 젖 웃음을 뿜고 있다
절로 두 손 내밀어져 이름 모르는 아기들의 얼굴을 받쳤다
두 손 꽃받침. 거두고 싶지 않은
두 손 꽃받침 안에 가만히 고여 드는
어느 위에서부턴가 내리는 미소, 미소
버스 오는가 몸 젖혀져 내 손 받침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노랑 보석 아기한테로 쑥 들어오는
길쭉하고 딱딱한 막대기 같은 두 손 받침
늙은 손, 뜻밖의 남자 노인의 손
키 큰 그 노인 내 뒤에 진작 줄 서 있었나
찬연한 노랑에 두 손 꽃받침 하는 중의 노인의 미소는
저절로 미소 자신은 볼 수 없는
하늘 땅이 내고 하늘 땅이 보는 저절로 미소
노인의 얼굴에 켜진 미소와
나와 얼굴 마주쳐 얼른 두 손 받침을 떼던 찰나의 수줍음
어쩌면 파랑새의 초인종 소리 같은 것
늙음과 시간의 파랑새 그 문간의 날아가지 않는 조그만 새가
생명의 명랑으로 울린 파란 방울소리 같은 것
―월간 《상상인》 (2022년 7월호)
1955년 서울 출생
1990년 《작가세계》등단
시집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
『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단 한 사람 』『세워진 사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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