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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톤 / 조동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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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73회 작성일 22-08-25 21:25

본문

룸 톤*

 

  조동범

 

 

  완벽한 적막은 없는 법이지. 완벽한 식탁도, 완벽한 구름도,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완벽한 저물녘 역시 존재하지 않는 법이지. 적막에 깃든 소리가 있기에 울고 있는 사람은 비로소 흐느낌으로 기억되는 법이고, 흐느낌은 허공의 결을 따라 저마다의 문양을 새기며 슬픔을 완성하는 법이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싶지만, 수평선을 향해 날아가는 새와 정박 중인 화물선의 채도를 완성하는 것은 허공의 침묵과 고요이다.

 

  볼 수 없는 것은 쉽게 믿을 수 없고, 들리지 않는 것은 그저 텅 빈 고요일 뿐이라고 누군가는 쉽게 단정한다. 그러나 이상하기도 하지. 들리지 않는 소리는 어느 곳에나 존재하지만 들을 수 없는 날들은 여전히 마음속에만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한다. 그런 날이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비현실에 그만 마음이 무너지고 만다. 그것은 믿을 수 없는 두려움이 되고, 두려움은 점점 자라 잭의 콩나무가 되고, 어느새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고, 잭의 콩나무를 도끼로 찍는 소리만 비어버린 적막처럼 섬뜩하게 동심원을 향해 빛을 발한다.

 

  잭의 콩나무를 찍는 도끼 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건 적막 속에 소리가 깃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느리게 내려앉는 햇살. 식탁 위에 놓인 수저 한 벌. 어젯밤의 깊은 사랑이 흐느끼는 슬픔을 믿기 힘든 것도 소리가 깃들지 않은 적막 때문이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낮과 밤은 영원한 불행을 복기하려 하고, 누군가 갑자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두려움은 바짝 말라붙은 허공을 따라 되돌릴 수 없는 침묵에 이르려 한다.

 

  아무것도 들을 수 없고, 그 무엇도 볼 수 없는 침묵에 닿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삶과 죽음이 하나인 것처럼, 아무것도 들리지 않거나 들을 수 없는 환영은 개와 늑대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분명한 사건이 되려 한다. 적막은 그런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듯 허공을 서성이고, 허공의 문양을 따라가며 믿을 수 없는 시간의 모든 지난함을 견디려 한다. 일몰의 아름다움을 보며 흘리는 눈물이 거짓이 아닌 것처럼 잭의 콩나무도 거짓이 아닐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저녁이 몰려올 때 빛과 어둠은 공중을 횡단하며 누군가의 진실과 거짓을 흐느끼기 시작한다. 방의 끝에서 걸어 나올 때 닫히는 방문의 단호함. 침묵하는 새벽의 서걱거림처럼 등을 돌린 연인들. 믿을 수 없는 것들은 소리가 깃들거나 깃들지 않거나, 적막 속에서 분명한 현실이 되는 법이다. 완벽한 적막은 없는 법이지만, 그것만이 명징하고 명백한 기호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완벽한 적막은 여전히 없는 법. 뒤를 돌아보면 환영처럼 무너지는 잭의 콩나무가 있다. 더 이상 만질 수 없는 연인과 어젯밤의 깊은 사랑이 있다.

 

* 모든 방에는 사람에게 잘 들리지 않는 고유한 소리가 존재한다. 영화의 경우, 대사나 음악 등에 룸 톤을 믹스하면 보다 현실적인 음향을 만들 수 있다.

   

계간 상상인2022년 여름호




 

  1970년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학교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2002년 《문학동네》신인상 당선.
  시집『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카니발』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평론집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비평집 『 4 년 11 개월 이틀 동안의 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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