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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활 / 박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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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99회 작성일 22-09-1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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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활

 

   박상수



  카드를 찍고 체온을 재고 너는 안으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다시 카드를 찍고 방문을 열고 가방을 내려놓는다 믹스커피를 타서 옆에 두고 컴퓨터를 켠다 메일을 확인하고 몇 가지 중요한 서류를 작성하여 보낸다 그러는 동안 옆자리의 사람이 들어오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이내 그 사람은 파티션 저쪽으로 사라진다 시간은 흐른다 중요한 많은 일을 한 것 같은데 시간은 조금 흐른다 너는 불쑥 생각한다 이게 정말 중요한 일일까, 나는 중요한 일을 한다고 믿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 생각에 빠진다 생각에 빠지면 그건 확신이 되고, 도망갈 수 없는 확신 속에서, 무슨 일이든 끝에서 조금 더, 있는 힘을 다하면 네가 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 될 거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지, 그러면 너는 중요한 일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거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밤의 운동장을 달리다가 밤하늘에서 붉은 물감이 쏟아지는 것을 본다 검정색과 붉은색을 구별할 수 없구나 두 눈의 실핏줄이 터진 채로 너는 걸어간다 흔들거리며, 비틀거리며, 나는 쓸모가 없는 사람이야, 나는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이야, 혼자 중얼거리며 트랙의 바깥으로, 바깥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 아주 오래 걸어가다 보면 어느덧 너는 이곳에 당도해 있다 여전히 두 눈이 벌겋게 터진 채로, 모든 것이 새로운 이곳, 너는 하나도 바뀐 것이 없는데 모든 것이 새로운 이곳, 창밖으로 풍경을 바라본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산이 있고 길이 있다 너는 고개를 숙이고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일에 몰두한다 이것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없는 일에 너의 온 정성을 다 바친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아무도 불러 주는 사람이 없는 곳, 화장실에서 사람을 만나면 황급히 등을 돌리고 나온다 오후 세 시가 넘어서야 마침내 너는 건물을 빠져나와 산길로 들어선다 오르막길이 이어지고 어슬렁거리며 고양이가 나타나고, 비로소 숨을 제대로 쉰다 벤치에 앉아 대낮에도 축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이 단순하게 보인다 골을 차 넣기, 그걸 위해 쉬지 않고 달리기, 축구하는 사람들을 지나 아래가 다 내려다보이는 정상을 지나 너는 천천히 길을 더 걸어 보기로 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오래된 연립주택을 지나 가끔 뒤를 돌아보면서, 큰 화분과 쌀을 함께 파는 이상한 가게를 지나 한 번 더 뒤를 돌아보면서, 택배 오토바이가 세워진 대리점을 지나 처음 보는 밥집으로 들어간다 주인은 말한다 새 밥이 다 돼가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육개장도 새로 뎁혀 가져다준다 너는 비로소 늦은 점심을 먹는다 배고프실까 봐 김을 빨리 뺐는데 밥이 조금 설익지 않았어요? 앞치마를 걸친 주인은 자꾸만 네 식사를 살핀다 오늘은 자격이 없어서 밥을 안 먹으려고 했어요, 라는 생각은 넣어 둔 채, 너는 오늘 처음으로 고맙다고 말한다.

 

―《문장웹진20229월호

 


박상수.jpg


1974년 서울 출생

명지대 대학원 문창과 박사과정 수료

2000년 동서문학시부문,  2004년 현대문학》 평론 등단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 『숙녀의 기분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 등

평론집 귀족 예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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