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한 사전 / 정영 > 오늘의 시

가련한 사전

  정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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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어수선한 당나귀들이 고요히

침을 섞고 뱉고 토하고 늘어뜨리며 뛰노는 것은

어떤 고요를 말하는 책에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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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선 모두가 전등 아래 모여 앉아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는 척하느라 고개 끄덕이기 바쁘고

우아하게 턱을 괴고 웃다가 집에 돌아와

사전을 만드느라 밤마다 두통에 시달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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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울음은 너무 오래 혼자 두지 말라는

저 울음은 추레한 마음을 모른 척해달라는

저 울음은 떠나달라는

저 울음은 먼 꿈을 꾸는 신음일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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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웃음은 돌아보지 말라는

저 웃음은 약이 좀 필요하다는 신호일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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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처럼 몰아치는 말의 회오리 속에서

점점 두꺼워지는 우리들의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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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마다 뒤섞이는 이 털 달린 짐승들의 말은

악마들이 지상에 도착하는 신호음처럼

밤하늘을 거대한 공포로 물들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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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도 빌딩 꼭대기에 올라가 외친다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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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우리의 말을 영원히 짐작할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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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이란 이 가련한 소통

먼 달을 보며 

―정영 시집, 『화류』 (문지, 2014)

1975년 서울 출생

2000년 《문학동네》등단

시집으로 『평일의 고해』 『화류』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