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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 조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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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89회 작성일 22-10-11 11:12

본문

눈사람

 

  조말선

 

 네가 없어서 너를 굴린다 너는 점점 차고 넘친다 네게 할 말이 있어서 너를 굴린다 너는 입을 꼭 다물고 있어서 점점 너를 굴린다 나는 네게 할 말이 있다고 입 속으로 되뇐다 너라면 다 들어줄 것 같은 말 입을 열기 전에는 나도 모르는 말 좀 참으면 녹아 없어지는 말 말하지 그랬니, 라고 할지 모르는 말 하고 난 뒤에 네가 찡그릴지 모르는 말 그러다가 설거지를 하면서 잊어버리기도 하는 별것 아닌 말을 굴리고 굴린다 입 안이 가득 차도록 굴리고 굴리다 보면 빨래를 걷어야 하는 시간이 오고 토마토를 구워야 하는 시간이 오고 병원 진료가 더 급해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면 시간이 지나가 버리는 말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말 네가 나에게 할 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굴리고 굴리느라 아직 하지 않은 말 하지 않아서 가능한 말이 참고 참다가 완전히 녹을 때까지 차고 넘친다

 

웹진 같이가는기분2022년 가을호



 

경남 김해 출생
199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및 《현대시학 》 등단
2001년 <현대시 동인상> 수상
시집 『매우 가벼운 담론』 『둥근 발작』
『재스민 향기는 어두운 두 개의 콧구멍을 지나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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