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외 출입금지 / 최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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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08회 작성일 22-10-27 17:26본문
관계자외 출입금지
최지하
미안하다는 말을
함부로 꺼내 읽어서 미안해
처음엔 당신 곁에 앉고 싶었어
오랜 밤을 지탱한 장롱의 발등처럼
시간의 청태가 끼었거나 끼어들었을 뿐
눈을 밀고 들어오는 불면의 밤을 떠돌면서 궁리했던 뒤끝
팔에 난 상처는 어젯밤 구제인형들의
심장을 끓이다가 얻은 고독이야
비상구는 왜 늘 잠겨있지
인형의 눈으로 흘겨보면 손목시계는 자동으로 멈추었어
손목에서 흘러나온 시간들이 마구잡이로 왔다 갔다 해
그것이 내가 멀미를 하는 이유야
한 번 들어선 길에선 돌아 나오는 출구를
짐작하기 어려워하는 나에게도 문제는 있어
방문 앞엔 출입금지라고 빨간 두 줄을 그어주고 싶어
낯선 허벅지와 충돌하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아
당신의 깡마른 그림자가 신경 쓰여
나를 신고 싶다면 나침반이 달린
구두를 보내줘
문을 열면 바로 돌아갈 수 있게
난 맹금류의 눈일 때가 있어
처음부터 낮을 밤이라 불렀으면 좋았을까
그게 결말이라 해도
나는 사람들의 말투를 닮기 위한 입을 열지 않을거야
―최지하 시집, 『오렌지나무를 해답으로 칠게요』 (상상인, 2019)
충남 서천 출생
광운대학교 대학원 졸업
2014년 〈무등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꼭 하고 싶은 거짓말』 『오렌지나무를 해답으로 칠게요』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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