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은 슬픔이 들여다보고 있을 때 /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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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은 슬픔이 들여다보고 있을 때
김기택
급히,
멈춘 전동 휠체어가
갑자기 나타난 계단 내리막길을 굽어보고 있다
어떻게 내려갈까
눈과 목이
계단과 휠체어 바퀴를 번갈아 살펴보고 있다
내려갈 생각을 하기도 전에
심장은 엉덩이에서 쿵쾅쿵쾅 흔들린다
아직 내려가지 않았는데도
머리통과 팔다리는 벌써 굴러가다 넘어지고 있다
계단 모서리에서 미리 튕겨 나간 숨소리는
불규칙한 직각이다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내려가는 발이 보이는
평범한 계단 길
둥근
발바닥이 굴러 내려가려 하면
경사는 가팔라지고 직각은 날카로워지는
울툭불툭 계단 길
계단 지름길을 앞에 두고 되돌아가는 동안
바퀴 소리가
통, 통, 통,
가보지 못한 길을 저 홀로 내려가고 있다
계단 길 내려다보던 눈은 그 자리 그대로 두고
돌고 돌아서 온
평탄한 길
고르지 못한 노면이 가끔 심장을 툭, 툭, 친다
―김기택 시집 『낫이라는 칼』 (문지, 2022)
1957년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수상
시집 『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사무원』
『소』『껌』『갈라진다 갈라진다』『울음소리만 놔두고 개는 어디로 갔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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