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귀 / 마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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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725회 작성일 16-01-28 09:57본문
책들의 귀
마경덕
책의 귀는 삼각형,
귀퉁이가 접히는 순간 책의 귀가 태어나네
주차표시 같은 도그지어*
졸음이 책속으로 뛰어들면 귀가 축 처지는 책
킁킁거리며 손가락을 따라가던 책은 그만 행간에 주저앉네
순순히 귀를 내주고
충견처럼 그 페이지를 지켰지만 해가 가도
끊어진 독서는 이어지지 않고 책의 심장에 먼지만 끼었네
귀 접힌 자리마다 쫑 메리 해피 도꾸 누렁이…
쥐약에 거품을 물고 쓰러진 눈빛이 생각나 눈에 든 문장에 밑줄을 긋네
쫑긋, 귀를 추켜들지 못하고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들고 가랑이에 바르르 눈치를 밀어 넣던 비굴한 이름들
흘러내린 두 귀를 실로 묶다가 본드를 발라본 적 있네
셰퍼드처럼 진돗개처럼 자존심을 세우지 못한
아비도 모르는 개들은
마루 밑 신발짝이나 물어뜯다가 복날에 하나 둘 사라졌네
순한 책의 귀,
녀석도 잡견이네 침을 묻혀도 짖지 않고 책장을 찢어도 물지 않네 누군가의 손짓을 따라가 집을 잃은 책들은
귀를 펴고 또 다른 주인을 섬기거나, 귀를 접고 헤어진 주인을 그리워하거나
*도그지어(dog's ear) : 책장을 접어놓은 부분이 강아지 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신발론』 『글러브 중독자』 『사물의 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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