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 / 김예강 > 오늘의 시

불면

  김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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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그림을 그린다

  그림이 지우개 없이 지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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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 다리를 그리면 코끼리 다리는 지워지고 코끼리 눈은 끝내

얼굴에 그려지지 않는다 얼굴을 그리면 얼굴이 지워진다 눈동자만

그려지는 그림을 그린다 손을 그리면 손가락 다섯 개는 손이 되지

않고 지워진다 얼굴보다 먼저 밤이 그림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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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지 않아도 그림이 그려진다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너는 앞에

서 있다 보내지도 않았는데 너는 가고 없다 보고 있을 뿐인데 가고

없는 얼굴들 대낮보다 더 환한 밤, 그림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 있다

​

  이대로 잠들게 하소서

  얼굴 없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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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강 시집, 『오늘의 마음』(시인동네, 2019) 

1961년 경남 출생
부산교육대학교 및 같은 대학원 졸업
2005년 《시와 사상》으로 등단
시집『고양이의 잠』 『오늘의 마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