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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읽어보세요 / 하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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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82회 작성일 22-11-24 14:00

본문

스트셀러 읽어보세요

 

   하여진


 

손을 대지 않아도 바람이 넘겨주는 책장

시속 60에서 머들령 터널 지나고 나면 시속 80으로 넘겨주는데요

덜커덩 넘어가는 깊은 하늘 속으로 기러기 한 마리 날아가는

삽화 한 장 펄럭이네요

가로, 세로, 글자들, 무덤 같은 괄호는 빨간 밑줄 그으며

산을 읽을 때는 세로로 읽어야 해요

돌로 눌러두지 못한 산의 기억들이 골짜기를 열고

눈포단 밑으로 흐르는 도정(搗精)의 물소리

투명한 맨발로 온 산을 졸졸졸졸 날아다녀요

태양이 산 그림자 지우고 내려오는 아침

청국장 냄새 굴뚝마다 진동하는 산내마을 이야기 속에

'끼니는 잘 챙겨 뭉냐' 어머님 음성에 울컥 빠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닿습니다.

노면 고르지 못함 고인 물 튐 과속방지턱

읽어가다 다시 떠오르는 문장,

우좌로 이중 굽은 도로표지는 굽은 길 오를 때

급하게 먹은 마음일랑 한 번쯤 쉬었다 가는 바람의 길

가끔 반사경에서 튀어나온 트럭이 책장을 휙 넘길 때

눈으로 꼭 밟고 있어야 해요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계절을 꿀꺽 삼켜버리거든요.

걱정하지 마세요. 인생은 짜여진 목차처럼

안개가 가라앉으면 길섶으로 봄은 되돌아와요

지금 읽고 있는 농공단지에 눈이 내리네요

숫눈 쌓인 캄캄한 이면을 침 발라 얼른 넘기면

까만 유리창에 비친 남자와 여자가 주고받은 대화 속에

나도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했거든요

산다는 게 좀 슬프지도 않으면 재미있겠어요?

그만 졸다, 잘못 내려온 길을 되짚어 갑니다

헤드라이트에 살아나는 17번국도,

먼 우주에서 내려온

황금오리알, 별자리가 뜨는 밤

책갈피로 그믐달 끼워놓고

읽다 만 책을 덮습니다, 밤새도록

달이 책 속에서 자라네요.

 

하여진 시집, Itaewon 곰팡이꽃 풀 옵션(포지션, 2022)



1960년 광주 출생

2009시인세계등단

시집 Itaewon 곰팡이꽃 풀 옵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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