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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 임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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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90회 작성일 22-11-28 13:25

본문

근무

 

  임승유

 

  울타리를 지날 때 나도 모르게 쥐었던 손을 놓았다 나팔꽃의 형태를 따라 한 것이다

  오므렸다고 폈다가

  안에 든 것이 뭔지 모르면서 그랬다

  살아 있다면

  뛰어다녔을 것이고 뛰어다니면 어지럽고 뛰어다니면 시끄러우니까 쉬는 시간인가 보다 

그러면서 붓 같은 걸로 살살 털어주면서 붓을 갖다 놓으면서 문을 닫고 나왔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창백한 도감이었는지 모른다

  물가에 앉아서 생각에 빠져서 종이에 싸갖고 온 것을 풀어보다가 아무것도 없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머니에 넣어오다니 내일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천천히 일어날 때

 

  쏟아지는 빛의 한가운데였다

  물감이 마르는 동안이라고 했는데

  아직 거기 남아서 꿈틀대고 있었다 여전히 내가 뭔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임승유 시집,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문지, 2020)

 



1973년 충북 괴산 출생
청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
2011년 《문학과 사회》신인문학상 당선

시집『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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