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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성 슬픔 / 김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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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98회 작성일 22-12-02 20:03

본문

퇴행성 슬픔

 

    김 휼

 

 

  바람이 멈추면 내 슬픔은 구체적이 됩니다

 

  봄 흙에 젖살이 내릴 즈음 연둣빛 말문을 텄지요 태생이 곰살맞아 무성한 소문을 달고 살아요 잘 여믄 눈빛으로 성장기는 푸르게 빛났습니다

 

  귀가 깊어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여름이 다 지나가는 어느 날, 번쩍, 순간을 긋고 가는 일성에 난청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나며 살았습니다 해야 할 일만 하고, 가야 할 곳만 갔습니다 말할 수 없는 일에는 침묵하며 지냈습니다

 

  참는게 버릇이 되어버린 직립은 퇴행성 슬픔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구부러지지 않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야 했으며 뼈마디에서는 바람소리가 들렸습니다 손가락 뼈들이 뒤틀리고 있지만 경탄을 잃지 않으려 식물성 웃음만 섭취해 보는데 오백 년이라는 치명적 무게를 가진 저로서는 피할 수 없는 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끔 은닉하기 좋은 새의 울음을 걸어 두고 몽상에 듭니다

 

  오늘은 청명, 누군가 시름 깊은 방에 들어 푸른 잎사귀 몇 장 머리맡에 두고 갑니다

  시간이 갈수록 속으로 쌓이는 회한은 나이테를 감고 도는데 움켜쥐면 구체적이 되는 슬픔, 나는 지금 옹색한 옹이를 창 삼아 세상과 단절을 면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신앙이 되는 것은 타당한 일입니다

 

계간 문예바다(2022년 여름호-공모시 당선작)

 

 

 

 

 

전남 장성 출생본명 김형미 

2017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백교문학상여수해양문학상등대문학상목포문학상 수상

2021년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 그곳엔 두 개의 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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