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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의 수집 / 윤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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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34회 작성일 22-12-05 17:14

본문

수치의 수집

 

   윤예영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나요?

 

그는 내가 그의 기억을 제대로 기록하고 있는지 물었다.

걱정마세요, 저는 편광체로 된 손을 갖고 있어요.

아니 감광성이던가.


조롱

마분지

종이봉투 안에서 짓물러가는 사과

책을 두 손으로 받들고 가는 소녀

조롱

지지부진

혼돈

외국인

장화

어떤 근사한 일


나는 잠시 펜을 내려놓고 두 손을 깍지꼈다.

. .


. ?

그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나는 펜을 들어 동판을 긁어보였다.

이렇게.


아하. 네에.


그럼 명랑에서부터 다시 이야기해볼까요?


그는 내 손에서 펜을 채어갔다.

명랑이라구요? 앨리스겠죠.


쿠퍼? 바우만?

어느 앨리스 말인가요.

부끄러움.


그는 펜촉으로 동판에 A를 새겼다.

바로 이 앨리스 말이에요.


나는 동판에 새겨진 글자를 보고 깊이 낙담.

그는 나의 낙담을 보고 물구나무.


어쩌면 명랑이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재갈을 보다 선호하긴 합니다만.

때로는 쾌감.


. .


나는 다시 용기를 내보았다.

동굴이 있다면 그건 오른쪽 허파와 왼쪽 허파 사이겠지요.

그건 사과였나요? 

어쩌면. 

대추야자열매일 리는 없으니까.

많이 짓물렀던가요? 

글쎄요, 

그렇게 많이는 아닌 것 같군요.

그쪽보다는.


. .


아직 끝난 것 같지는 않지만 저는 먼저 가봐야겠군요.

아직 몇 건의 계약이 남아있어서.


저 확신에 찬 발걸음.


나는 부채처럼 손을 활짝 펴서 어제 손질한 손톱을 내려다보았다.

이내 부끄러워져 두 손을 말아쥐었다.


정말이지 몸에 달린 가지를 제멋대로 흔들어대는 것들은


. .


그의 손이 딛고 있던 곳은 너무 좁아서

미처 펼쳐보이지도 못한 문서들을 가까스로 펼쳐놓을 수 있었다.

어찌나 오래 굴려먹었는지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달큰하고 선뜩한.

한숨.

그러나 다시 명랑으로.

마침표.


웹진 시인광장20143월호

 

 


 

1977년 서울 출생

1998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으로 해바라기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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