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샵티를 생각하는 저녁 / 서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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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39회 작성일 22-12-22 15:47

본문

샵티*를 생각하는 저녁

 

     서정임

​​

 

오늘도 나 아닌 내가 죽었다 하루가 죽었다

무너지는 무덤

솟아나는 얼굴

간신히 숨통 트인

염소의 하루가 살았다

 

저녁을 먹는다

식탁 위에 무릎을 접은 길이 놓인다

뽑힌 말뚝이 놓인다

 

나 대신 오늘을 살았던 나 아닌 나를 생각한다

나를 향해 쏟아놓던 상사의 번득이는 눈알과

내 앞에 내팽개쳐지던 서류들

그 반경을 벗어날 수 없는 나는

그들이 파놓는 무덤 속으로 한없이 빠져들고,

숨이 막혔다

매에 애 울어도 소리 나지 않는 울음이 꾹꾹

가슴을 짓눌렀다

그때마다 내가 만들어 놓는

나 아닌 내가 체념한 그 타협의 순간들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든다

내일을 살아줄 나 아닌 나는

눈코 입귀가 오늘과 다르다

매일매일 그들에게 보일 모습이 다르다

내 하루를 살아줄

내 하루를 죽여줄

내 인형들

 

나 아닌 내가 식탁 위에

주르륵 놓인다

* 고대 무덤 속 부장물로 주인 대신 일하는 노예 인형

 

서정임 시집, 아몬드를 먹는 고양이(문학선, 2020)

 




 

 전북 남원 출생 

 2006년 계간 《문학·선》등단
 2012년 경기문화재단의 문예창작지원금 수혜
 시집으로 『도너츠가 구워지는 오후
아몬드를 먹는 고양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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