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후의 명소 / 이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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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22회 작성일 22-12-26 09:45본문
불후의 명소
이정원
숨겨야 할 샅 같은
좁다란 뒤란
점묘화로 핀다
질문이 답보다 많아 구부러진 집
해의 기울기가
점성(粘性)의 집 처마에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궁색한 질문이 나뭇가리 틈에서 몸집을 불리는
문패의 뒤쪽 우멍한 뒤란
지나간 날들의 안부는 모두 뒤란에게 묻는다
침 발라 꾹꾹 눌러쓴 일기장 넘기면 불거져 나오는 누추한 페이지
희망은 접히고 절망은 꽃피고
엄마의 눈물이 뒤란에서 고욤처럼 굴러다녔지
그 눈물을 찍어 바른 분꽃들 어룽어룽 저녁을 흔들어
불어터진 칼국수 양푼에 노을꽃 다발로 졌지
아버진 이슥토록 먼 별
말랑한 밤의 속뼈 우려
장독들이 침묵을 엿처럼 고며 깊어갈 때
아버지 노랫소리 거나한 틈 비집고
여투어 둔 울음 때맞춰 퍼내는 소쩍새 목이 쉴 무렵
고독이
파란의 밤을 데리고 나동그라지던 뒤란
호롱불 한 줄기 기어 나와 새벽에 기대 바래던 곳
한 가계의 뼈대가 낡은 우산살처럼 어긋나도록
내색도 없이 조용조용 늙어간
아직도 질문의 괄호 안 우물처럼 깊은
유서 깊은 명소
두고 온 것 많아 저릿저릿, 푸르다
―이정원 시집, 『몽유의 북쪽』 (파란, 2022)
2002년〈불교신문〉신춘문예
2005년 《시작》등단
2009년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시집 『내 영혼 21그램』『꽃의 복화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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