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채널을 보는 남자 / 정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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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87회 작성일 23-01-08 20:59본문
골프 채널을 보는 남자
정한아
푸른 하늘 아래 초록색 풀밭이 펼쳐져 있네
풀밭은 평화롭고 지저귀는 새 소리 경쾌하지
저 드넓은 풀밭에서 저 멋진 막대기로 조 앙큼한 하얀 공을 좀 때려 봤으면!
남자는 하염없이 풀밭을 보네
저 드넓은 풀밭에서 조 앙큼한 하얀 공을 좀 잡아 봤으면!
고양이도 함께 보네
나뭇잎은 서정적으로 바람에 몸을 뒤집고
사람들은 떨어진 공을 찾아 헤매이는데
불현듯
까아 까까까 까아 까아마귀 울면
사나운 바람 퍼붓는 소나기
천둥 번개가, 이야, 하늘의 불이란 불은 죄다 켰다 껐다
(큰 나무 밑은 위험해요! 어서 대피하세요!)
쇠막대기는 전도율이 높고
아, 어떡하지 내 공 아직 못 찾았는데
깊은 물에 빠진 공
악어는 공을 삼키고
연못은 악어를 삼키고
공 찾으러 간 사람을 삼키고
아, 어떡하지 연못이 삼킨 악어가 삼킨 내 공에 담긴 딱딱한 소원
고양이는 뽀글거리는 물거품을 예의주시하는 중
비 갠 뒤 뭉게구름 빛나고 푸른 하늘 아래
초록색 풀밭이 펼쳐져 있네
평화로운 새 소리는 경쾌도 하지
남자는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에 가려
돈을 벌었네
드레스코드에 맞는 옷과 챙 달린 모자
때리기 좋은 막대기를 살 파격할인을 기다리면서
연못 바닥에 잠든 천 개의 딱딱한 꿈
소파가 삼킨 천 개의 시든 영혼
―《문장 웹진》 2023년 1월호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졸업
2006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어른스런 입맞춤』『울프 노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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