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어두운 이 지상에서 / 이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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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03회 작성일 23-01-24 11:46본문
아직도 어두운 이 지상에서
―‘라파엘 어린이집’ 방문기
이승하
보지 못하면서 말 못 하는 보람이
말 못 하면서 못 움직이는 은정이
못 움직이면서 자폐증인 진영이
자폐증이면서 앞 못 보는 성구
어두운 지상에 외돌토리로 버려져
다중의 장애로 괴로워하는 새싹들
라파엘 어린이집의 식사 시간입니다
밥 먹는 모습이 가지각색입니다
똥오줌을 못 가리는 보람이
밥맛이 없다고 입을 벌리지 않습니다
뇌성 소아마비를 앓았던 은정이
밥상 위로 자꾸만 고꾸라집니다
양말 하나도 못 신는 진영이
국이 맛없다고 맨밥만 먹습니다
종일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성구
숟갈질을 못 해 국을 줄줄 흘립니다
조물주가 버리신 어린이들일까요?
주말에는 부모가 데려가기도 하지만
부모가 버린 어린이들도 있답니다
그럼 엄마 아빠란 말도 모를까요?
혼자서 마냥 미소짓는 보람이
무슨 일이 종일 저렇게 즐거울까요
구석에 앉아 고개만 회회 돌리는 성구
무슨 일이 종일 저렇게 못마땅할까요
아직도 어두운 이 지상에서
새싹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엄마 아빠가 되고, 언니 오빠가 되려는
날개 없는 천사들의 모임이 있습니다
아직도 어두운 이 지상에서
어린이들이 낑낑거리며 기어갑니다
아직도 사랑하고픈 그 무엇을 찾아
온몸으로 기어가는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계간 《미래시학》 2022년 겨울호 권두시
1960년 경북 의성 출생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사랑의 탐구』 『폭력과 광기의 나날』 『박수를 찾아서』 『생명에서 물건으로』
『뼈아픈 별을 찾아서』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불의 설법』『감시와 처벌의 나날』『나무 앞에서의 기도』등
시선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등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
인물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작품상, 천상병귀천문학대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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