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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 / 유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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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66회 작성일 23-02-06 12:41

본문

구릉

 

   유종인

 

 

땅이 불룩하니

언덕진 짐을 지고 누워버린

구월은 소슬하니 구릉을 하나 가져야지

 

낯이 얼근 번민을 데려와

벌러덩 그래 덩그러니

서로 등을 맞대고 누우면 하늘이

푸르게 날 한번 안아보자고

둥글게 팔을 뻗어 오는 게

여간 흥이 많은 구릉(丘陵)이 아니야

 

실랑이 끝에 이별조차 놓치고

여기선 천지간이라는 풀무 그 풀무질 끝에

신명 같은 새들이 날아가고

옛일을 베고 누웠지 못 부는 휘파람도 마저 불어야지

크고 작은 역사를 실어 간 구름들,

그러니까 난 야사(野史)의 등짝에 누웠네

 

민틋한 언덕에 동돌 같이 누워

두 발을 하늘에 뻗어 주고

두 팔을 접어 팔베개로 땅에 물려선

나로부터 옹립되는 가을이지

물 마른 패인 굴헝*에 누워서도 사랑은

한껏 솟아오르는 구릉이야

 

  * 굴헝 : '구렁'의 방언(제주)

 

​―웹진 같이 가는 기분2022년 겨울호

 


1968년 인천 출생
1996년《문예중앙》시부문 당선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시집『아껴 먹는 슬픔 』『교우록 』『사랑이라는 재촉들』『양철지붕을 사야 겠다』
시조집 『얼굴을 더듬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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