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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왕자 / 이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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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91회 작성일 23-04-11 20:58

본문

울의 왕자

 

   이현호



나 우울의 왕자

모두 캐내고 캐내어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버려진

폐광처럼 어둡고 쓸쓸하다

 

기쁨, 즐거움, 행복, 명랑내 신하들이여

너희는 광대 뒤에 숨어서 까닭을 묻지만,

이유는 없어

왕자는 만들어지지 않고, 태어난다

 

태어나는 것을 배운 적 없어도

언젠가 태어나봤던 것같이 탄생하여, 숨 쉰다

 

웃는 얼굴로 걱정하는 신하들이여

너희는 매일 밤 나를 위해 연회를 열어놓고 어디로 사라지는가

나는 너희의 말대로 사냥도 하였다

빛으로 가득한 들판을 말달리며 땀도 흘렸다

내 손으로 쏘아 죽인 짐승이 피 흘리며 헐떡거리는 것을 볼 때

어디로 숨는가 너희는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듯이

 

오늘도 피에 잠긴 들판에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꿈에서 깨어났다

또다시 그대들의 말을 좇아 숲속을 산책할 때

나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사슴처럼 혀를 빼어 물고

가장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흔들거리고만 싶었다

짐작이나 하겠는가, 너희 그대 당신들이여

그렇게 태어나버려서 모든 슬픔이 복에 겨운 소리가 되는 왕자를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을 방에서 반려동물이나 쓰다듬고 싶구나

내 방에는 빈 새장이 하나 있고

밤이면 새장 가득히 어둠이 날아들어 구구거린다

낮이면 세상모르고 하얗게 잠드는 내 귀여운 반려동물이여

다시 밤이 올 때까지 나는

새장 속에 손가락을 넣고 까딱까딱하고만 있다

 

모두 긷고 길어 더는 물 한 방울 남지 않아 버려진

우물처럼 깊고 초라한

나 우울의 왕자에게 너희는 묻기만 한다

언제 왕이 되시느냐고

왕이 되면 세상이 모두 내 것이라고

 

비어 있는 왕좌는 아직도 선왕의 피로 축축한데

세상 모든 것이 왕의 것이기에 죽음마저 그의 것이었는데

 

언제까지나 빈 새장을 열었다 닫았다가 하며

반려동물에게 바람이나 쐬어주고 싶은 내게

너희는 왕국의 후사와 사랑 따위를 읊조리는구나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당신 그대 너희들이여

새장 속일지라도 함께 들어가 영영 살고 싶었던 사람이 내게도 있었음을

그러나 그것은 벌의 침 같은 것

사랑에 쏘인 마음은 지금도 벌겋게 부어올라 가려운데

한번 침을 쏜 벌은 죽어버린다

 

한번 태어나봤으니 또한 알리라, 내 백성들이여

이처럼 어둡고 쓸쓸하고 깊고 초라한 것이 너희가 사는 왕국이다

축 처진 혀를 내밀고 뿔이 잘린 채 죽어가는 짐승이 그대들의 왕좌에 오를 것이다

빈 새장을 끌어안고 죽어가거나 늙어가는 왕

 

울고 싶구나,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모두 캐내고 캐내어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모두 긷고 길어 더는 한 방울도 남지 않을 때까지

눈물의 왕자인 듯이 아니 눈물의 백성이 되어

울고만 싶습니다

 

내 왕관을 당신의 머리에 가만히 씌워주고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20234월호


 

 

1983년 충남 연기 출생
2007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산문집 방밖에 없는 사람방 밖에 없는 사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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