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왕자 / 이현호 > 오늘의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오늘의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舊. 테마별 시모음  ☞ 舊. 좋은시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우울의 왕자 / 이현호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95회 작성일 23-04-11 20:58

본문

울의 왕자

 

   이현호



나 우울의 왕자

모두 캐내고 캐내어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버려진

폐광처럼 어둡고 쓸쓸하다

 

기쁨, 즐거움, 행복, 명랑내 신하들이여

너희는 광대 뒤에 숨어서 까닭을 묻지만,

이유는 없어

왕자는 만들어지지 않고, 태어난다

 

태어나는 것을 배운 적 없어도

언젠가 태어나봤던 것같이 탄생하여, 숨 쉰다

 

웃는 얼굴로 걱정하는 신하들이여

너희는 매일 밤 나를 위해 연회를 열어놓고 어디로 사라지는가

나는 너희의 말대로 사냥도 하였다

빛으로 가득한 들판을 말달리며 땀도 흘렸다

내 손으로 쏘아 죽인 짐승이 피 흘리며 헐떡거리는 것을 볼 때

어디로 숨는가 너희는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듯이

 

오늘도 피에 잠긴 들판에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꿈에서 깨어났다

또다시 그대들의 말을 좇아 숲속을 산책할 때

나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사슴처럼 혀를 빼어 물고

가장 높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흔들거리고만 싶었다

짐작이나 하겠는가, 너희 그대 당신들이여

그렇게 태어나버려서 모든 슬픔이 복에 겨운 소리가 되는 왕자를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을 방에서 반려동물이나 쓰다듬고 싶구나

내 방에는 빈 새장이 하나 있고

밤이면 새장 가득히 어둠이 날아들어 구구거린다

낮이면 세상모르고 하얗게 잠드는 내 귀여운 반려동물이여

다시 밤이 올 때까지 나는

새장 속에 손가락을 넣고 까딱까딱하고만 있다

 

모두 긷고 길어 더는 물 한 방울 남지 않아 버려진

우물처럼 깊고 초라한

나 우울의 왕자에게 너희는 묻기만 한다

언제 왕이 되시느냐고

왕이 되면 세상이 모두 내 것이라고

 

비어 있는 왕좌는 아직도 선왕의 피로 축축한데

세상 모든 것이 왕의 것이기에 죽음마저 그의 것이었는데

 

언제까지나 빈 새장을 열었다 닫았다가 하며

반려동물에게 바람이나 쐬어주고 싶은 내게

너희는 왕국의 후사와 사랑 따위를 읊조리는구나

헤아릴 수 있겠는가, 당신 그대 너희들이여

새장 속일지라도 함께 들어가 영영 살고 싶었던 사람이 내게도 있었음을

그러나 그것은 벌의 침 같은 것

사랑에 쏘인 마음은 지금도 벌겋게 부어올라 가려운데

한번 침을 쏜 벌은 죽어버린다

 

한번 태어나봤으니 또한 알리라, 내 백성들이여

이처럼 어둡고 쓸쓸하고 깊고 초라한 것이 너희가 사는 왕국이다

축 처진 혀를 내밀고 뿔이 잘린 채 죽어가는 짐승이 그대들의 왕좌에 오를 것이다

빈 새장을 끌어안고 죽어가거나 늙어가는 왕

 

울고 싶구나,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모두 캐내고 캐내어 더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모두 긷고 길어 더는 한 방울도 남지 않을 때까지

눈물의 왕자인 듯이 아니 눈물의 백성이 되어

울고만 싶습니다

 

내 왕관을 당신의 머리에 가만히 씌워주고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20234월호


 

 

1983년 충남 연기 출생
2007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산문집 방밖에 없는 사람방 밖에 없는 사람』 등






 

 

 

추천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694건 4 페이지
오늘의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154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2 1 02-24
154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74 1 03-08
154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6 1 03-17
154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5 1 04-06
154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57 1 04-17
153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3 1 06-17
153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15 1 06-28
153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41 1 10-25
153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3 1 11-07
153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1 1 11-21
153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8 1 12-05
153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0 1 12-16
153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63 1 01-04
153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90 1 01-12
153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61 1 01-24
152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24 1 02-14
152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51 1 03-01
152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72 1 03-17
열람중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96 1 04-11
152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6 1 04-23
152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2 1 05-14
152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8 1 05-28
152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24 1 07-02
152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63 1 08-11
152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0 1 03-08
151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 1 04-19
151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7 1 02-12
151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68 1 04-25
151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47 1 05-08
151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63 1 05-16
151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6 1 06-14
151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5 1 12-12
151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77 1 08-19
151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83 1 10-09
151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78 1 11-18
150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6 1 12-21
150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72 1 06-08
150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6 1 12-26
150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47 1 01-05
150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50 1 02-16
150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41 1 03-08
150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3 1 03-17
150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82 1 03-28
150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97 1 04-06
150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57 1 04-19
149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15 1 04-28
149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6 1 06-02
149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12 1 06-17
149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2 1 10-25
149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8 1 11-10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