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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수집가 / 김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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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55회 작성일 23-04-16 16:30

본문

방수집가

 

    김향미

  

 

옆 좌석 승객이 목을 조른다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가방을 뺏으려 한다

 

여기, 살려 주세요

거기, 이 소리 들리지 않나요

끝내 터져 나오지 못하는 비명은 발버둥의 크기로 가늠이 될 테지만,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는다

 

저항의 포기가 깊은 깨달음이라 생각한 적 있다

 

커다란 여행가방, 안에는

검은 나뭇잎과 푸른 눈발, 거짓의 혓바닥을 수없이 잘라 담았다

 

간혹 조인 숨통을 틔워 나의 발버둥을 즐기는

그것은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

태어날 때부터 나를 노리고 있었던 것

 

모두가 귀가를 서두르는 중이다 버스는 노선을 벗어나지 않고

 

승객들, 묵묵히 큰 가방이다 기사와 승객, 모두

한통속일지도 모른다 버스의 좌석이 운명을 좌우한다

가방을 그냥 줄 수도 있었을 거다 이미 의지 밖으로 벗어난 건지도 모른다

 

저항이 포기되지 않는 건 깊이 꿈꾸기 때문이다

가방이 부려진다

여기는 꿈의 바깥, 검은 나뭇잎 뒹굴고 푸른 눈발 덮쳐오는 잿빛 숲이다

  

 —계간 《시와 반시》 2023년 봄호



kimhyangmi-140.jpg


1966년 경북 안동 출생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

2009년 유심을 통해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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