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 / 안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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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67회 작성일 23-04-28 16:11본문
착시
안상학
동고비의 어느 들판에서 한 마리 양을 보았네
목동도 양떼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초원
털을 깎은 지 오래인 양은 누더기 같았네
가까이 가서야 양인 줄 알았네
처음엔 죽은 줄 알았네
다가서자 귀찮다는 듯이 힐끔 한 번 쳐다보고는
비척비척 일어나서 아득한 지평선 너머로 천천히 사라져 갔네
길을 아는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은
길도 없는 길을 길인 양 천천히 사라졌네
(세상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떠도는 사람들과 아흔아홉 마리 양을
지키는 목동들의 전쟁터)
고비에서 만난 한 마리 양은 누더기 하나 걸치고 살았네
누구를 기다리거나 아무개를 찾거나 하는 눈치는 아니었네
고비에서는
길을 모르는 양은 길을 잃지도 잃을 길도 없었네
오직 길을 아는 인간만이 길을 잃고 헤매던 날이 있었네
- 안상학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걷는 사람, 2020)
1962년 경북 안동 출생
1988년 <중앙일보>신춘문예 당선
제15회 고산문학대상 수상
시집『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 『오래된 엽서』
『아배 생각』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시의 꽃말을 읽다』 등
인물평전 『권종대-통일걷이를 꿈꾼 농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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