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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얼굴로 / 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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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58회 작성일 23-05-06 11:33

본문

늘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얼굴로

 

     박민규


 

잠시 눈을 감고 서기로 한다

칠포, 정자, 주전

반짝이는 해변들의 길이는 어차피 상대적인 것

벨트 푼 바지로 출렁대는

비릿한 파도의 포말이

벌써 반생도 남지 않게 된 내 삶의

몇 걸음 앞에서

수평선 쪽으로, 몰래 썰물로 뒷걸음질 치다가

녹슨 등대들의 유언을 모으려

귀를 세우다가

그것은 한때

중얼거리는 오후의 한때를 나는 보내고 있다

그것은 자유

더는 꿈이 사라진 자유 그것은

더는 누구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게 된 바다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고 입을 꾹 다문 수평선의 바다

산소 호흡기처럼

소라고둥에 입을 대고 외쳐 보아도

식칼 든 수평선 뒤로

좀처럼 물러서지 않으려는 결기의 바다

모래알처럼 창백한 얼굴로

오늘도 나는

밀물로 뒤바뀌는 시간을 기다린다, 오늘도

해변에 서 있는 건

느닷없이 밀려와 내 발목을 잘라내고

상대적인 만큼

나보다 큰 키의 여인을 사랑하기 위한 것

내 무릎까지 싹둑 잘라내고

억지로 키를 맞추어

볼품없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다가오는 것

첫 신호의 바다

그러고 보니 아직 반생이나 남았더군

죽여달라고 지겹게

중얼거리는 나를 향해

쏴아쏴아 파도로 칼을 갈며 다가오는 바다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20232월호


 


 

1973년 인천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및 동 대학원 박사과정

2007년 문학사상》 으로 등단

시집 박카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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