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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랑 놀았지요 / 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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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00회 작성일 23-05-14 16:31

본문

랑 놀았지요


    이진명

 

 

바닷가 한낮의 휘휘한 갯벌에서

게랑 놀았지요

하얗게 놀았지요

도망가지 마 도망가지 마

이 가느다란 실을 끊고

괴로운 바다세상으로는 가지 마

내 끝의 마음과 닮은

벌려진 갯벌에 엎드려 예배했을 때

어린 게 한 마리 내 입맞춤을 받아줬지요

거무튀한 어린 게 집어올려

손바닥에 놓고 무릎에 놓고

가슴에도 기게 했지요

한쪽 발에 실을 걸어 또 천천히 끌었지요

나하고 놀아 나하고 놀아

실끝을 들어올려주고 내려주고 했지요

여기는 끝입니다

그 너무 넓은 여름을

무서운 햇발 속을 팔다리 마르며 건너왔지요

우리나라 제일의 서남단 포구

갯벌만이 꿀렁거리며 벌려진

내 마음의 끝입니다

버려진 바닷가 그 여름 휘휘함 속에서

게랑 놀았지요

시간에 바랜 뼈들처럼 하얗게 놀았지요 

 

―문학 전문 플랫폼 《시마을이달의 초대시인” (20115)



 

1955년 서울 출생
1990년 《작가세계》등단
시집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
『 집에 돌아갈 날짜를 세어보다』
『단 한 사람 』『세워진 사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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