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강물 / 김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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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강물
김왕노
언덕에 드러누으면 내가 누운 땅에서 아, 몇 천 년 흘러가는 뼈강물소리 들린다. 너무 느리고 미세해 흐른다고 느낄 수 없으나 분명 흐르는 뼈 강물,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윗대가 삭아 이룬 뼈 강물, 햇살을 머금고 흐르는 뼈 강물에 백년 된 씨앗도 실려 움직이지 않는 듯 천천히 흐르다 어쩌다 깨어나 백년싹을 디밀어 꽃을 피우면 뼈 강물은 꽃 그림자에 취해 오래 머물고, 때로 출렁하면 뼈 강물에 깃들었던 방울벌레가 놀라 멈췄던 노래를 다시 시작하고 우리나라 금수강산 곳곳에 윗대의 사랑, 누대의 사랑이 뼈 강물이 되어 흐른다. 진토 된 뼈가 삭은 뼈가 이슬에 촉촉이 젖으며 뼈 강물의 점지로 생긴 태아의 실핏줄이 흐르고 손가락 발가락이 생기면 뼈 강물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흐르는 듯 마는 듯한 그 흐름마저 멈추고 금줄이 쳐지고 고추가 매달리는 시간까지 빈둥거리는 것이다. 지금 나는 언덕에 누워 피곤했던 몸을 누이고 몇 천 년 흘러가는 뼈 강물소리에 젖어 설핏설핏 조는 것이다.
1957년 포항출생
1988년 공주교대 졸업
1992년 대구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말달리자 아버지』.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사진 속의 바다』 『그리운 파란만장』 『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 『이별 그 후의 날들』
『복사꽃 아래로 가는 천년』 등.
2003년 한국해양문학대상, 제7회 박인환 문학상, 제3 회 지리산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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