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샛노래서 시큼한 /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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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샛노래서 시큼한
김진수
외나로도, 엊그제 로켓이 날아올랐지요.
온통 우주라
노랗던 고흥이 별천지입디다.
우주 떡방앗간,
우주 꽃집,
우주 부동산,
우주 장례식장,
우주 민속주점 등등 딴 세상이더라고요.
내 사랑 탐스러운 유자씨는 아직 푸르러 벌 나비 꼬이지 않아
우주 떡방앗간에 가니 무지개떡을 잘게 썰어 팔기에 한 판 샀지요. 우주인 입맛도 나랑 같은지 그냥저냥 먹을 만하데요. 내일이 내 사랑 유자씨 생일이라 우주 꽃집에 갔더니 새털구름, 양떼구름, 조개구름이 예쁘게 포장되어 진열되어 있었고요. 주문하면 별꽃도 꺾어다 준다기에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처녀좌'를 주문해놓고 나와 호기심에 우주 장례식장에 들렀더니 하늘나라까지 로켓으로 안전하게 모셔드린다 하네요. 다만 편도 승차권만 발행하고 꼭 염라대왕 초청장을 제시하여야 하며 선착순이라 강조하네요. 우주 부동산에 들어가니 은하계 모든 행성을 거래한다기에 이참에 나중에 별장을 지을 혹성 하나 마련할까 했더니 평당가가 상상 이상이라 내가 일론 머스크도 아니고 해서 엄두도 못 내겠더라고요. 스스로 측은해 단술이나 한잔할까 하고 들어간 우주 민속주점, 거기에 가셔서는 막걸리나 동동주를 찾지 마세요. 생뚱한 눈빛이 따라붙을 거예요. 금성주, 토성주, 화성주, 온갖 행성의 술이 있고, 술마다 풍미가 다르니 한 모금씩 시음해보시고 기호에 맞춰 주문하면 된다고 먼저 온 사람이 나긋하게 귀띔하네요.
술은 밀밭에만 가도 취하는지라 그림의 떡이고,
떡은 무지개떡이 맛있었고,
내친김에 우주장례식장에 30년 후로 예약하려 했으나 예약은 안 받는다고 해 그냥 나왔지요.
저는 굼떠서 로켓 타고 가기는 틀렸기에 까짓것 앞으로 사 오십 년 더 버티어 보자고 다짐에 다짐을 더해봅니다.
부럽고 샘나고,
로켓도 좋고 우주도 좋고 고흥반도 경치도 죽여주지만
고흥 하면 샛노랗고 상큼한 내 사랑 유자씨 뿐이라
고이고이 키워 손탈 때 되면 알려 달라고 전화번호 꾹꾹 눌러주고 왔지요.
생각만 해도 내내 입안에 용천수가 솟네요. 시큼한
강원도 주문진 출생
2016년 《시와세계》 등단
시집으로 『설핏』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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