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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어 한 마리 9900원 / 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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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31회 작성일 23-06-02 22:47

본문

어 한 마리 9900

 

      하 린

 


생의 조건으로 나의 형벌은 낮은 포복이다

퇴화된 부레는 노비였을지도 모를

할애비의 유전자를 이어받았고

뱃가죽을 착 바닥에 붙이고 있을 때

흘러나온 웃음은 비열하다

저당 잡힌 영혼의 값은 겨우 9900

자존심은 늘 질기지도 않고

물컹하지도 않은

먹기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예리한 칼날만 다가오면 몽땅 내주고

속수무책이 되어야 한다

수족관이 한바탕 출렁거린다

얇게 썰어진 살점이 한 점씩 먹힌다

소주잔이 파도처럼 오르내리고

얼굴이 주의보 수준을 넘어

경보 상태로 붉게 위태로워진다

창자까지 모조리 넣은 매운탕이

빠른 가락으로 겨울 바다를 건너 갈 때

만취한 중년 사내가

소화 덜 된 찌꺼기를 쏴와 밀어 올린다

쏟아진 부유물 속엔

붉은색 상흔이 군데군데 처박혀 있다

그도 저가로 도시에 공급되는 한 마리의 광어다

생의 조건으로 우리의 형벌은 낮은 포복이다

 

하린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문학세계사, 2010)



하린시인.jpg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박사)

2008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와 시창작안내서 시클

1초 동안의 긴 고백​ 

2011년 청마문학상 신인상, 2015년 송수권시문학상 우수상

2016년 한국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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