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 / 신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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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05회 작성일 23-06-11 21:39본문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
신용목
나는 천년을 묵었다 그러나 여우의 아홉 꼬리도 이무기의 검은 날개도 달지 못했다
천년의 혀는 돌이 되었다 그러므로
탑을 말하는 일은 탑을 세우는 일보다 딱딱하다
다만 돌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비린 지느러미가 캄캄한 탑신을 돌아 젖은 아가미 치통처럼 끔뻑일 때
숨은 별밭을 지나며 바람은 묵은 이빨을 쏟아내린다
잠시 구름을 입었다 벗은 것처럼
허공의 연못인 탑의 골짜기
대가 자랐다 바람의 이빨자국이다
새가 앉았다 바람의 이빨자국이다
천년은 가지 않고 묵는 것이니 옛 명부전 해 비치는 초석 이마가 물속인 듯 어른거릴 때
목탁의 둥근 입질로 저무는 저녁을
한 번의 부름으로 어둡고 싶었으나
중의 목청은 남지 않았다 염불은 돌의 어장에 뿌려지는 유일한 사료이므로
치통 속에는 물을 잃은 물고기가 파닥인다
허공을 쳐 연못을 판 탑의 골짜기
나는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에 물려 있다 천년의 꼬리로 휘어지고 천년의 날개로 무너진다
―신용목 시집, 『바람의 백만 번째 어금니』 (창비, 2007)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2000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등
제19회 백석문학상, 제18회 현대시작품상, 제14회 노작문학상
제2회 시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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