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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 / 이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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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24회 작성일 23-07-0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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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


    이현승

 


   실망이다. 사랑이, 취업이, 선거가, 국가가, 외교가, 자녀가, 부모가, 인생이. 애를 썼는데 결과가 이것뿐이란 말인가. 절망까지는 아니다. 그냥 낙망 정도. 사색이 되어 화장실로 뛰어갔는데 긴 줄을 봤을 때의 느낌이랄까. 일단 코에 침을 바르고. 다급에 난감을 더한, 아니 그 위에 다시 황급을 얹은 상황이랄까. 여기까지인가 봐, 겸허히 마음을 비우고 있는데 열심히 해서 한번 더 해 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기분이랄까. 무한히 시작되는 기분. 무한 반복의 실패가 예견된 기분. 퍼붓는 비를 피해 집 안으로 들어갔더니 태풍이 지붕을 걷어차 버린 기분. 들어가도 나와도 여전히 바깥인 기분.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려줄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기분. 본질적으로 인생이 스팸 메시지 같은 기분. 내가 최고가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아 김빠진 사람에게 네가 최고야 할 수 있어! AI의 격려 알고리즘 같은 세상이라니. 실망이다. 자존감 없음? 박탈감? 이런 걸 뭐라고 하지? 모르겠다. 나의 실망이 판단인지 기분인지. 판단의 단초인지 사건의 결과인지. 알 듯 말 듯 간수 부어 놓은 콩물처럼 뭔가가 잡힐 듯도 한 나의 실망.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20237월호



 


 

1973년 전남 광양 출생
1996년<전남일보>신춘문예 당선
2002년《문예중앙》신인문학상 수상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시집 『아이스크림과 늑대』『친애하는 사물들』

생활이라는 생각』 『대답이고 부탁인 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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