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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포도를 생각함 / 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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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80회 작성일 23-07-13 22:09

본문

름 포도를 생각함


     이용임

 


멸망을 사시면 몰락을 드립니다

수치를 사시면 절망을 드려요

한시적으로

슬픔은 사랑과 한 세트입니다

장마는 마르고 겨우 잠든 새벽엔 벼락이 쳐요

창문 아래 침대를 둔 잠들이

깨지도 않지만


누가 요즘 청춘을 두르나요

물에서 처녀를 건졌더니 심장에 장미가 꽂혀있더라

가십난의 연애도 무거워 팔리지 않는 여름 저녁

흰 접시 위에 포도 한 송이

말갛게 씻어 올려둡니다


다락에 올려둔 여행 가방의 자물쇠는 녹슬어 열리지 않고

소인이 지워진 여권은 갱신 날짜가 지나고

그 바다에 걸어둔 자물쇠

그 돌 아래 숨겨둔 머리카락

새벽에 핀 첫 꽃을 뚝뚝 따서 장식한

모르는 사람의 담장 위


그런 게 수치고 몰락이겠지요

무거운 언어들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때

사라지지 않는 귀신들도

챙 넓은 모자를 씌워 여름 한낮 시장으로

마실 가고 싶은 시절


포도의 껍질은 검고

알맹이는 푸르고 달콤해요


한 알 한 알 오래 따먹었습니다

배부르지 않는 감정을 다 먹어버려서

뼈대만 남았습니다


눈물도 한 김 식혀 서늘해야

상하지 않는 계절입니다


손가락도 입술도

희게 펼친 치마도 모두

빠지지 않는 색으로

물들었지만


 

―《아토포스2022 겨울(창간호)



common11.jpg


1976년 경남 마산 출생 

숙명여대 전산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 『안개주의보』 시는 휴일도 없이 

산문집 당신을 기억하는 슬픈 버릇이 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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