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물원을 위하여·2 / 엄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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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90회 작성일 23-07-24 21:35본문
이 동물원을 위하여·2
- 동물원 학교
엄원태
나는 꽤 창의적인 분야의 선생이었으나
퇴직 후 노인대학 대신 동물원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굳이 좋아서 선택한 건 아니었는데
사회적 풍조 탓이라고 해 두어야겠다
설립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진 바 없지만
명성 드높은 역대 교장 선생님들의 희생과 봉사 덕분에
연예인을 능가하는 팬덤으로 무리를 이끌어
학교는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선생님들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실력이 출중하고 평판이 자자하신 분들이다
양 떼를 잘 몰아 유명해진 목동 출신의 전 교장 선생님은
아흔아홉 마리 양 대신 길 잃은 한 마리 양에 끝내 집착하다가
마침내 승냥이 무리를 규합해 등장한 학생과장 세력에게 쫓겨났다
유혈목이를 목도리 장식처럼 두른
신령한 기운의 도움이 컸다는 후문이었다
소문은 곧 잠잠해졌지만
학교는 두 반으로 나뉘어 패가 갈렸다
서로 벤치마킹하면서도 서로를 비난하여 저주를 퍼붓거나
살점이 뜯기고 피가 나도록 물고 늘어졌다
학생들은 무조건 두 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짐승들이 창궐하는 세태를 맞아
이 동물원은 홍보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신입생들로 무진장한 자산을 늘려 나갈 것이기에
나는 이제 나라 따위를 염려해서
저출산 문제 같은
노인의 쓸데없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참 여러모로 대단한 걸 배우고 있는 셈이다
우리들의 동물원 학교로부터
―《문장웹진_콤마》 2023-04-07
1955년 대구 출생
서울대학교 및 동 대학원 졸업(박사)
199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침엽수림에서』 『소읍에 대한 보고』
『물방울 무덤』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등
제1회 대구시인협회상, 제22회 금복문화상, 제15회 백석문학상,
제2회 발견문학상, 제18회 김달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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