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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 또는 必死 / 이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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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426회 작성일 16-02-24 10:23

본문

 

필사 또는

 

   이화은

 

좋은 詩 한 편을 필사하는데

결국 절망을 베껴 쓰고 말았다

행간이란 이래서 무섭다

말이란 끝까지 가봐야 아는 법

이랑 속에 무슨 씨앗이 들어 있는지

꿈과 해몽은 반대이듯

불륜처럼

다른 놈의 씨를 품고 있었던거다

과장은 가장이다

다 안다고 하면서도 깜박

눈앞의 마술에 속아 넘어가 듯

속는 것도 속이는 것도

사는 재미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홍콩 독감처럼

손끝을 타고 이미 온몸에 번져버린

신열

절망의 바이러스는 언제나 급성이다

감기쯤이야

시큰둥한 계절 속에 지금

죽음이 날 필사하고 있다

 

 

경북 경산 출생.
1991년 《월간 문학》으로 등단.
2003년 현재 육군사관학교 국문과 교수
시집으로 《이 시대의 이별법》 《나 없는 내 방에 전화를 건다》
《절정을 복사하다》《미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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